1. 서울 도심에 남아 있는 오래된 제단
경동시장을 둘러본 뒤 우리는 종로 서쪽에 있는 사직단을 찾았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이곳은 지금은 조용한 공원처럼 보이지만, 조선 시대에는 국가의 중요한 제례 공간이었다.
사직단은 토지를 관장하는 신(社)과 곡식을 관장하는 신(稷)에게 제사를 올리던 제단이다. 농업이 국가의 기반이었던 시대에 땅과 곡식의 풍요를 기원하던 장소였다.
조선을 건국한 뒤 한양을 도읍으로 정할 때 궁궐을 중심으로 종묘와 사직단을 함께 배치하는 전통적인 도시 원칙이 적용되었다. 흔히 ‘좌종묘 우사직’이라고 부르는 배치 방식이다.
경복궁을 기준으로 동쪽에는 종묘가, 서쪽에는 사직단이 놓였다. 종묘가 왕실 조상을 기리는 공간이라면, 사직단은 나라의 농업과 백성의 먹거리를 상징하는 공간이었다.
2. 국가가 기원했던 것은 결국 먹거리였다
전통 사회에서 농업은 단순한 산업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삶과 사회의 안정이 모두 농사와 곡식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래서 왕은 정기적으로 사직단에서 제사를 올리며 토지와 곡식의 풍요를 기원했다. 국가가 공식적으로 농업과 먹거리를 가장 중요한 기반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셈이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이러한 의례는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의례가 담고 있던 인식은 여전히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사람의 삶은 무엇 위에 서 있는가.
그 질문의 답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의 삶 역시 결국 땅과 먹을거리 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3. 잊혀진 감각, 다시 생각해야 할 세계관
산업화와 도시화 이후 많은 사람들은 농업과 먹거리를 생산의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소비의 대상으로만 경험하게 되었다.
식재료는 시장과 유통망을 통해 도시로 들어오고, 우리는 그것을 상품의 형태로 만난다. 그 과정에서 음식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토양과 환경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할 기회는 점점 줄어들었다.
하지만 오늘날 세계가 마주한 기후위기는 다시 한 번 이 문제를 되돌아보게 한다. 토양의 건강, 생태계의 균형, 지속가능한 농업은 더 이상 농촌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가 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사직단이 상징하던 세계관은 단순히 과거의 의례로만 남겨 두기에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땅을 존중하는 태도, 농업을 사회의 기반으로 바라보는 인식, 그리고 먹거리가 공동체의 삶과 직결되어 있다는 감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4. 발효가 시작되는 자리
발효 역시 이 세계관과 연결되어 있다.
된장과 간장은 콩에서 시작되고, 술은 곡식에서 시작된다. 김치 역시 밭에서 자라는 채소가 기반이 된다. 발효는 미생물의 작용이지만 그 출발점은 언제나 농업에서 나온 재료다.
토양이 건강해야 좋은 재료가 나오고, 좋은 재료가 있어야 지속가능한 발효도 가능하다.
사직단을 둘러보며 우리는 발효를 조금 더 넓은 맥락에서 생각하게 되었다. 발효는 단지 장독대 안에서 이루어지는 기술이 아니라, 땅과 농업, 환경과 인간의 생활이 오랜 시간 연결되며 만들어 낸 문화이기도 하다.
5. 다음 여정을 향하여
사직단을 천천히 둘러본 뒤 우리는 인왕산 자락을 따라 잠시 걸었다.
서울은 거대한 도시지만 산이 가까이 있다. 이런 지형은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식문화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이번 한국 발효 탐사는 전국 여러 지역을 방문하는 일정이었지만, 그 출발점이 서울의 이런 공간들이었다는 점은 의미가 있었다.
땅과 농업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그 질문을 마음에 담은 채 우리는 다음 날부터 서울을 떠나 태안으로 향했다. 이제 발효의 이야기는 도시를 벗어나 실제 생산의 현장으로 이어진다.
알아두면 좋은 배경
사직단 (Sajikdan)- 서울 종로구 사직로에 위치한 조선 시대 제단으로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던 공간이다. 농업을 국가의 기반으로 보았던 전통 사회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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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종묘 우사직- 도성을 설계할 때 궁궐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종묘, 서쪽에는 사직단을 배치하는 전통적인 도시 계획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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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 도심에 남아 있는 오래된 제단
경동시장을 둘러본 뒤 우리는 종로 서쪽에 있는 사직단을 찾았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이곳은 지금은 조용한 공원처럼 보이지만, 조선 시대에는 국가의 중요한 제례 공간이었다.
사직단은 토지를 관장하는 신(社)과 곡식을 관장하는 신(稷)에게 제사를 올리던 제단이다. 농업이 국가의 기반이었던 시대에 땅과 곡식의 풍요를 기원하던 장소였다.
조선을 건국한 뒤 한양을 도읍으로 정할 때 궁궐을 중심으로 종묘와 사직단을 함께 배치하는 전통적인 도시 원칙이 적용되었다. 흔히 ‘좌종묘 우사직’이라고 부르는 배치 방식이다.
경복궁을 기준으로 동쪽에는 종묘가, 서쪽에는 사직단이 놓였다. 종묘가 왕실 조상을 기리는 공간이라면, 사직단은 나라의 농업과 백성의 먹거리를 상징하는 공간이었다.
2. 국가가 기원했던 것은 결국 먹거리였다
전통 사회에서 농업은 단순한 산업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삶과 사회의 안정이 모두 농사와 곡식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래서 왕은 정기적으로 사직단에서 제사를 올리며 토지와 곡식의 풍요를 기원했다. 국가가 공식적으로 농업과 먹거리를 가장 중요한 기반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셈이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이러한 의례는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의례가 담고 있던 인식은 여전히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사람의 삶은 무엇 위에 서 있는가.
그 질문의 답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의 삶 역시 결국 땅과 먹을거리 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3. 잊혀진 감각, 다시 생각해야 할 세계관
산업화와 도시화 이후 많은 사람들은 농업과 먹거리를 생산의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소비의 대상으로만 경험하게 되었다.
식재료는 시장과 유통망을 통해 도시로 들어오고, 우리는 그것을 상품의 형태로 만난다. 그 과정에서 음식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토양과 환경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할 기회는 점점 줄어들었다.
하지만 오늘날 세계가 마주한 기후위기는 다시 한 번 이 문제를 되돌아보게 한다. 토양의 건강, 생태계의 균형, 지속가능한 농업은 더 이상 농촌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가 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사직단이 상징하던 세계관은 단순히 과거의 의례로만 남겨 두기에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땅을 존중하는 태도, 농업을 사회의 기반으로 바라보는 인식, 그리고 먹거리가 공동체의 삶과 직결되어 있다는 감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4. 발효가 시작되는 자리
발효 역시 이 세계관과 연결되어 있다.
된장과 간장은 콩에서 시작되고, 술은 곡식에서 시작된다. 김치 역시 밭에서 자라는 채소가 기반이 된다. 발효는 미생물의 작용이지만 그 출발점은 언제나 농업에서 나온 재료다.
토양이 건강해야 좋은 재료가 나오고, 좋은 재료가 있어야 지속가능한 발효도 가능하다.
사직단을 둘러보며 우리는 발효를 조금 더 넓은 맥락에서 생각하게 되었다. 발효는 단지 장독대 안에서 이루어지는 기술이 아니라, 땅과 농업, 환경과 인간의 생활이 오랜 시간 연결되며 만들어 낸 문화이기도 하다.
5. 다음 여정을 향하여
사직단을 천천히 둘러본 뒤 우리는 인왕산 자락을 따라 잠시 걸었다.
서울은 거대한 도시지만 산이 가까이 있다. 이런 지형은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식문화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이번 한국 발효 탐사는 전국 여러 지역을 방문하는 일정이었지만, 그 출발점이 서울의 이런 공간들이었다는 점은 의미가 있었다.
땅과 농업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그 질문을 마음에 담은 채 우리는 다음 날부터 서울을 떠나 태안으로 향했다. 이제 발효의 이야기는 도시를 벗어나 실제 생산의 현장으로 이어진다.